복음에 대한 반응들
사도행전 13장 6~16, 38-46절
사도행전 13장 6~16, 38-46절
바울과 바나바가 전한 동일한 복음 앞에서도 사람들의 반응은 극명하게 갈렸습니다. 바예수는 자신의 기득권과 영향력을 잃지 않기 위해 노골적으로 복음에 저항했으며, 이는 오늘날에도 자신의 이권이 위협받을 때 나타나는 본능적인 방어와 같습니다.
유대교인들과 개종자들은 신학적 명분을 내세워 비방했지만, 그 내면에는 평생의 수고가 허무해지는 것에 대한 분노, 기득권 상실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자격 없는 이방인들이 은혜를 누리는 것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이 숨어 있었습니다.
이는 탕자의 비유에 나오는 '큰 아들'의 모습과도 같습니다. 신앙생활의 연수가 쌓일수록 우리도 은혜를 잊고 보상심리와 의무감에 빠져 종교적인 기득권을 주장하며 복음의 순수성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반면, 비시디아 안디옥의 경건한 이방인들은 자격 없는 자신들에게 값없이 주어진 구원의 은혜를 듣고 기뻐하며 찬양했습니다. 우리도 내가 쌓은 종교적 탑을 내려놓고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어 오직 은혜의 복음만을 온전히 기뻐하고 누려야 합니다.
"신앙의 연수가 '자격'처럼 느껴질 때 우리는 복음의 본질에서 멀어집니다. 복음은 자격 없는 자를 초청하는 은혜의 소식입니다. 우리가 서 있는 곳은 자격이 아니라 오직 은혜의 자리입니다."
한 주간의 삶에서 셀원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에 대한 자신의 묵상이나 설교 내용 중에서 마음을 터치하는 내용은 무엇입니까?
신앙생활을 오래 하면서 혹시 내 안에 "나는 이만큼 했는데"라는 보상심리나, 다른 사람의 은혜받음에 대한 불편한 마음(큰 아들의 심리)이 든 적은 없나요? 내 안의 종교적 기득권에 대해 솔직하게 나눠봅시다.
문 밖에 서 있던 이방인들처럼, 자격 없는 나에게 주어졌던 구원의 감격과 첫사랑을 기억하나요? '은혜'라는 사실이 지금 나의 신앙과 삶의 태도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나눠봅시다.
내가 복음을 순수하게 누리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나의 '종교적 탑'(신앙 연수, 직분, 헌신 등)은 무엇입니까? 심령이 가난한 자로 서기 위해 오늘 내려놓아야 할 것은 무엇인지 결단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