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시적 승리와 미시적 성화
바울과 바나바의 거울
사도행전 15장 35~41절
바울과 바나바의 거울
사도행전 15장 35~41절
1. 거시적 승리 뒤에 숨은 미시적 균열
사도행전 15장은 초대교회 역사상 가장 찬란한 ‘거시적 승리’, 곧 예루살렘 공의회의 일치를 기록합니다. “이방인에게 율법의 짐을 지우지 말고 오직 은혜의 복음으로 하나가 되자!”는 위대한 결의로 교회의 분열을 막아낸 것입니다. 그런데 그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그 일치를 이끌어 낸 두 거인 바울과 바나바 사이에서 뜻밖의 큰 균열이 일어납니다. 거대한 명분 앞에서는 하나였던 사람들이, 가장 작고 사적인 일상의 관계 속에서 무너지는 아이러니입니다.
2. 기질의 축복과 기질의 저주 (TJ 바울과 FP 바나바)
두 사도가 격렬히 다툰 원인은 ‘마가 요한’이라는 청년이었습니다. 원칙과 효율을 중시하는 과업 중심의 바울(TJ)은 1차 선교 때 중도 이탈한 마가를 다시 데려갈 수 없다 했고, 관계와 사람을 먼저 품는 바나바(FP)는 한 영혼을 끝까지 살리려 했습니다. 한때 아무도 받아주지 않던 바울을 품어 살려낸 바나바의 그 따뜻한 기질이, 이제는 ‘심히 다투어’(헬라어 παροξυσμός, ‘발작·경련’) 갈라서는 갈등의 원인이 됩니다. 두 사람 다 악한 것이 아니라, 기질이 달랐을 뿐입니다.
3. 거시적 원칙과 미시적 용납은 분리되어야 합니다
공적 진리를 다루는 거시적 관계에서는 ‘원칙과 진리 중심’의 단호함이 필요합니다. 바울이 공의회에서 율법주의에 타협하지 않은 것은 옳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원칙의 칼날’을, 마가를 받아들이느냐 하는 지극히 사적이고 미시적인 관계에까지 그대로 들이댔습니다. 미시적 관계에서 최우선은 진리의 사수가 아니라 ‘용납과 소통, 사람을 살리는 것’입니다. 가정은 거시적 법정이 아니라 미시적 사랑의 터전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4. 전지적 관점에서 보는 하나님의 섭리와 인간의 책임
다툼의 결과, 하나의 선교팀이 둘로 갈라져 복음의 영토는 오히려 두 배로 확장됩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셨다”는 요셉의 고백처럼, 하나님은 인간의 허물마저 하나님 나라의 확장으로 바꾸셨습니다. 그러나 결과가 좋았다고 과정의 상처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어차피 하나님이 다 좋게 바꾸실 텐데” 하며 내 성질을 합리화하는 것은 은혜를 방종으로 바꾸는 죄입니다.
5. 미시적 성화로 완성되어 간 바울
하나님은 실패의 자리에 바울을 내버려 두지 않으셨습니다. 인생 말년, 로마 감옥에서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에서 바울은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딤후 4:11)고 고백합니다. 한때 발작처럼 밀어냈던 그 마가를, 마지막 골방에서 그리워하며 부른 것입니다. 거시적 담론에 강했던 청년 바울이, 곁에 있는 연약한 한 사람을 품어내는 ‘미시적 성화’의 사도로 완성되어 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거시적 성인’이면서 ‘미시적 죄인’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기질은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를 뿐입니다. 거대한 교회의 일치를 이룬 실력으로, 내 앞의 한 사람을 살려내고 용납하는 미시적 성화의 길을 걸어가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됩시다."
한 주간의 삶에서 셀원들과 나누고 싶은 감사, 고민, 또는 기도제목은 무엇입니까?
오늘 말씀에서 특별히 마음에 남은 장면이나 문장은 무엇이며, 그것이 내 삶에 어떻게 들려왔습니까?
큰 명분과 구호 앞에서는 헌신적이지만, 정작 가까운 가족이나 동역자와의 작은 일상에서 ‘파록시스모스(발작·경련)’를 일으켰던 경험이 있습니까? 거시적 관계와 미시적 관계를 대하는 나의 모습은 어떻게 다른지 나누어 봅시다.
내 곁에 있는 사람의 어떤 기질(까칠한 원칙, 답답한 부드러움 등)이 나를 가장 불편하게 합니까? 그것을 ‘틀림’이 아니라 ‘다름’으로, 나아가 ‘하나님이 나의 모난 자아를 깎으시는 도구’로 받아들이려면 어떤 태도가 필요할까요?
바울이 노년에 마가를 “나의 일에 유익한 자”라 부른 것처럼, 지금 내가 용납하고 다시 품어야 할 ‘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이번 한 주, 그 미시적 관계의 현장에서 복음의 렌즈로 한 걸음 내딛을 수 있는 구체적인 결단을 나누어 봅시다.